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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일기] 자기소개서의 압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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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지원자: 물속에달○ 일단 현장에 대한 열정 혹은 사명감을 배운 시기였습니다. 제가 다녔던 000대학교와 산학협력으로 맺어진 <11111>에서 인턴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4일 신문사로 출근했고 금요일 하루 학교 수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역사의 현장에 있다’는 사명감에 저는 학교 수업을 마친 후에도 굳이 취재를 나가곤 했습니다. 청계천 복원 사업 때 전태일 열사 동상 제막식은 비가 왔음에도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국장님께서는 ‘학교 수업이 끝난 후 가기엔 시간이 없을텐데’라며 말리셨지만 말이죠. 제막식에 참석한 이소선 여사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현장에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11111>에서 정직원으로 채용된 후 매향리 미군 사격장을 취재 갔을 때 일입니다. 아침 취재지시를 받고 경기도 화성으로 향했습니다. 태풍경보가 발령된 상태라 농섬까지 배를 띄울 수 없어 30~40여분 가랑비를 뚫고 달렸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입고 있던 옷은 폭이 좁은 무릎길이의 치마였습니다. 발걸음을 넓게 뛸 수 있도록 치마는 접어 올리고 우산이 바람에 젖혀지도록 뛰어 절반이 잘려나간 농섬까지 다녀왔습니다. 신발이며 옷이 흙범벅이 되긴 했지만 폭탄이 떨어진 섬 바닥까지 볼 수 있었던 흔치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보도사진에 대한 재주도 엿볼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주간지였던 <11111>에서는 1면에 제가 찍은 사진이 실린 적도 있습니다. 사진기자 선배 두 분의 사진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것이 실력의 전부이긴 했지만 말이죠. 사진기자 선배 두 분이 모두 인정하고 내주신 1면 자리는 제게 소중한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첫 직장이었던 <11111>이 내부의 불미스러운 일로 문을 닫은 후 입법전문지 성격이 강한 <22222>으로 이직했습니다. <11111>이 현장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일 할 수 있었던 곳이라면 <22222>은 이슈와 입법에 대한 집중력을 가르쳐 준 직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올해 초 발생한 용산 철거민 화재 참사 사건 후속취재입니다. 당시 신문 지면에서는 사건 자체도 잊혀지고 있었지만 국회에서 이뤄지는 관련 법 개정 작업은 거의 보도되지 않다시피 했습니다. 용산사건 발생 100일 즈음에 맞춰 관련 법 개정 작업에 대한 정부여당의 개정안과 야당이 제시하는 법안을 비교해보고싶다는 생각에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많은 독자가 구독하지는 않았지만 몇몇 독자로부터는 ‘꼭 필요한 기사였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전문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다지원’에서 기획했던 ‘세계 금융위기의 구조와 그 역사적 의미’라는 강의를 수강했습니다. 진보적 학계의 금융위기 진단과 해법을 들을 수 있는 강좌였습니다. 물론 당장 기사화 할 목적은 아니었지만 세계적인 금융위기라는 상황 자체를 깊이있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풀로엮은 집’에서 하는 경제학 강좌 등 관심있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강좌 등은 시간을 쪼개서라도 듣고 공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기자는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보람 있던 <22222>에서의 기자생활에서 제게는 단점도 생겼습니다. 기사를 어렵게 쓴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사가 그랬던 것은 아닌데, 용어가 낯설고 복잡한 법을 다루는 기사에서는 특히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 점은 앞으로 다른 글쓰기에서도 고쳐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현장에 대한 소명의식을 훈련하게 해줬던 <11111>에서의 시간과 입법전문지로서 기자의 전문성을 높이 샀던 <22222>의 경험. 현상을 쫓는데 급급하지 않고 이슈를 깊이 있게 탐사보도하는 <xxx>에서 이 경험을 꽃피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xxx> 신입기자 공채 공고는 반가웠습니다. 제게 3년이라는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기자에 대한 열정과 자질을 키워준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보완해야할 점, 단점도 있습니다. 기자 일을 처음 시작했던 그때처럼 <xxx> 선배님들께 배우겠습니다. <xxx>에서 뵙겠습니다. |
grass100@
공무원들은 다 그런가. 아니 노동부 공무원들은 다 그런가.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 못 받은 퇴직금을 돌려받기 위해 결국 노동부에 신고를 했습니다. 00회사에서 임금 일부와 퇴직금 전액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로 시작한 진정서를 접수하고. 지난 화요일 선배가 출석요구를 받았습니다. 선배 두 명과 후배 한명 그리고 나까지 넷이서 노동부 서울남부지청으로 갔죠. 더운날 찾아찾아 간 그곳. 건물은 크고 좋았으나. 그 안에 사는 공무원들은 영~ 아니올시다였습니다.
'특별사법경찰관'이라는 명패가 쓰인 근로감독관은 참, 무표정했고, 무감정의 대표주자처럼 보였습니다. 나야 이번 건에 대해 위임받은 일이 없기 때문에 근로감독관과 더 이야할 것이 없었지만 한시간 반이나 조사를 받아야했던 선배는 중간중간 '짜증난다' '왜 이렇게 오래걸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화장실 가고싶다' 등의 문자를 날리며 감정을 마구마구 표출했죠.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즉슨, 조사 중에 다른 전화 통화를 한 십여분간 한 것부터 법적인 용어를 잘 몰라 되묻는 말에는 '그런거 몰라요?'라며 면박주는 말로 대꾸를 했다는 등등. 선배는 정말 봇물터진듯 그날 하루종일 감독관을 건어물 씹듯 다뤘습니다.
누구나 하듯 이 한번의 경우만 가지고 '공무원은 다 그래'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아주 안 할 수도 없는 건. 내가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갔던 고용지원센터 담당자도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는 거죠. 뭘 물어보기 겁나게 무표정한 얼굴과 자기 할말만 하고 입은 닫아버리고. 한번 더 물으면 '뭐 그런걸 묻냐'는 표정으로 시큰둥~대답하고 마는. 안그래도 퇴직 후에 실업급여를 받으러 가면서 위축되있었는데 그런 태도에 더 작아지는 걸 느꼈다고 해야할까요, 뭐 그런.
물론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죠. 거의 같은 종류의 일에 대해 하루 수십명씩 응대하며 호소와 하소연과 더러는 말도 안되는 일방적인 주장을 들어줘야 하는 그 직업의 고단함이야 말로 다 할 수 없겠죠. 하지만 조금 유하게 대해주면 안되나요. 안그래도 취직도 안되고 퇴직한 것만으로도 짜증나있는데.
에잉~. 내가 과한걸 바라고 있는건지 >0<
구체에서추상으로
여행은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누구나 하는, 진부한 말. 똑같이 반복하고 싶지는 않은 말이지만 다녀오고 나면 수긍하게 되는 말인것 같아요. 어쩔수 없이 내가 '일상'에서 벗어나면 일단 시간이 많아서 이것저것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게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이번 여행은 '친구'를 찾아 떠난 여행으로 남을 것 같아요.
지리산에 함께 했던 또 다른 내 친구 등산화와 쵸큼 보이는 배낭.
그나마 한 네댓번 가본 제가 코스를 정했어요. 근데 뭐 저도 기라성같은 선배들 따라갔던 지리산행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밤 기차 타고 새벽 3시에 남원 도착해서 다시 택시를 타고 백무동지구로 올라가는 코스를 택했죠. 후~ 계곡 코스라 가파르기가 빌딩 벽 만만치 않아요. 춈춈히 쌓아 올린 돌계단을 밟고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다가 70여분쯤 흐른 시점에선 벌에 쏘이기까지. >0<
벌침에 쏘이고 소리만 지르고 있는 제게 지나가시는 분이 스틱으로 벌을 쫓아 주셨어요. 앞서 올라가던 친구들은 그제서야 힘겹게 올라갔던 길을 내려왔고요. 다른 내려가시던 분들은 파스도 뿌려주셨고요. 벌에 쏘여서 놀라긴 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벌에 쏘였어도 힘내서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119 긴급구조대에 전화해 봤는데 "얼음...이 없을 테니까 찬 계곡물에 찜질좀 하시고요, 그냥 올라가셔도 됩니다"하는 말 듣고. 그냥 올라갔습니다. (참, 사람을 강하게 키우는 긴급구조대셨던 것 같아요. ㅎㅎ)
친구들은 벌에 쏘인 핑계 삼아 "내려가자"고 했지만 뭐 이미 시작한거 멈출순 없잖아요. 다들 다시 출발했죠. 특히 같이갔던 여자친구와는 보조를 맞추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수다의 주제는 단연 '남자'이야기에서부터 우리의 미래와 결혼, 미래 등등. 그리고 전공이 사회학, 경제학이다보니 정치, 경제, 사회 제반현상에 대한 짧은 단상들까지. ㅋㅋ 끄집어 낼 수 있는 이야기 몽땅. 그리고 서울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는 그네나 나의 집안사까지.
대학 때 했던 이야기든 못 했던 이야기든 다시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됐죠. 그리고 또 이 친구가 백수 선배거든요.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고(물론 더 다닌다고 해도 비젼이 없었기 때문에 때려쳤지만) 당장의 백수시절 이야기와 지금의 학습지 선생님의 고단함까지.
우리가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왜 우리가 백수가 됐을까'하는 거죠. 나야 비자발적 실업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친구도 명확히 '자발적 실업'이라고 할 수많은 없어요. 집에서는 비싼 등록금에 대학까지 보내줬는데 자기개발적인 측면에서 더 성장할 수 없는 회사일. 노하우 쌓이지 않는 잡일 담당. 주변에서도 친구보고 그랬대요. 빨리 그만두고 다른 일 찾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그냥 그럭저럭 살것이 아니라면.
우리 대학 때 교수님 한 분이 이런말을 해주셨거든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폴 브루제)."
"Il faut vivre comme on pense, sans quoi l'on finira par penser comme on a vécu.(paul bourget)"
그말을 진리처럼 믿었던 우리 대학 친구들은 아직도 생각하는 대로 살기위해 발버둥 치고 있죠. 그 친구는 하고 싶었던 토익공부를 했고, 원하는 점수를 얻어냈고, 물론 지금은 잠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곧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갈거래요.
이젠 제가 걱정이예요. 한 순간.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해 의심한 적이 있었어요. "잘 하고 있나, 잘 할 수 있나, 잘 할 수 있을까." 이건 일을 하면서도 든 생각이지만 백수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런 의구심은 더 짙어졌고요. 또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미래가 있는 직업일까하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니. 답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이번 산행하면서 다시 한 번 다잡는거죠. 그래도 생각하는대로 한 번 살아보자고.
우리라고 이름지을 수 있는 그 친구도 나도, 아직 젊으니까! 하!하!하! 그리고 내 옆엔 나보다 먼저 백수의 길을 걸었던 친구도, 백수킴의 고민을 나눠줄 친구가 있으니까(뭐, 물론 자랑은 아니지만;;;).
구체에서추상으로
드디어 국가 등록 실업자가 됐습니다.
오늘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간거죠. 약 1시간 30분간 구직표 작성과 실업급여 관련 설명을 들었습니다. 30여분은 실업급여 부정수급 방지 차원의 교육. 첫번째 설명을 한 강사는 발음이 부정확하고 마이크에 울리는 목소리라 앞자리에 앉았음에도 알아듣기 힘들었고(결국 설명회 참가자들 항의로 마이크를 바꾸기는 했으나 마찬가지.) 두번째 강사는 완전 반복의 달인. 분명 못 알아 듣는 사람이 있었을테니 그랬겠지만; 해도 너무하지 같은 내용 3번 반복은 춈;;;;
그리고 활용할 수 있는 구직활동과 교육. 상담 등도 안내 받았는데 아직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더군요. 이번달은 프로그램이 거의 끝나서 맞는게 없었습니다.
구미가 당기는 것은 적성검사. 언젠가 받아봤겠지만 그때가 언제인가 싶고 요즘 드는 고민과 함께 다시 적성검사를 한 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면접, 자기소개서 및 이력서 작성 특강 등도 들어두면 유용할 것 같고요.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면접 등은 별 것 아닌거 같아 보였는데 막상 대하니 만만치 않던 것 중에 하나더군요. 하하;;;
또 직업능력개발계좌제라는 것도 있어서 1인당 200만원 한도내(본인 부담 20%)에서 여러가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고요. 근데 그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음식`미용`컴퓨터 등은 다양한데 그 외 정작 나와 맞는 부분은 부족한 것 같아서 쵸큼 아쉽지요잉;;; 이참에 영어 공부나 다시 해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건 또 될지 모르겠고요.
여튼. 오늘 실업급여를 신청하면 2주 후에 재취업활동계획서를 들고 오라고 했는데. 그날 오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안준다고 하네요. 무서워. 재취업활동계획서는 또 어떻게 써야할지 걱정이 막막 듭니다.
실업급여 책정은 월급의 50%(+알파) 실업급여 지급 기간은 고용보험 가입 기간에 비례한다고 합니다. 고용보험 홈페이지 실업급여 모의 계산기로 계산하면 휴음;;;; 씀씀이를 확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드네요. 생활비가 모자란다고 알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곧바로 실업급여 압수. 몰래 알바했다가 걸리면다면 전액 환수. 30분 동안 부정수급에 관해 세뇌를 당했더니 알바 해야겠다는 생각도 싹~ 달아나버렸습니다. 휴휴.
근데. 놀아보니 참... 즐겁네요 ^^ 아~ 계속 놀고싶어라.
구체에서추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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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자 및 실업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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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 천명, %, 전년동월대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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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
2009.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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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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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 감 |
증감률 |
증 감 |
증감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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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업 자 남 자 여 자 |
764 478 287 |
938 607 331 |
184 117 67 |
24.5 23.9 25.5 |
960 617 344 |
196 139 57 |
25.6 29.1 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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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업 률 (계절조정) 남 자 (계절조정) 여 자 (계절조정) |
3.1 (3.2) 3.3 (3.5) 2.8 (2.8) |
3.8 (3.9) 4.2 (4.3) 3.2 (3.4) |
0.8p
0.8p
0.7p |
-
-
- |
3.9 (4.0) 4.2 (4.4) 3.3 (3.4) |
0.8p
0.9p
0.5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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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경험 유무별 실업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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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 천명, %, 전년동월대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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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
2009.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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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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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감 |
증감률 |
증감 |
증감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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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체 > 취업 무경험 취업 유경험 |
764 57 707 |
938 35 903 |
184 -8 192 |
24.5 -17.9 27.0 |
960 47 914 |
196 -11 207 |
25.6 -18.5 29.2 |
|
< 남 자 > 취업 무경험 취업 유경험 |
478 37 441 |
607 16 591 |
117 -11 128 |
23.9 -40.8 27.7 |
617 29 587 |
139 -8 146 |
29.1 -20.7 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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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자 > 취업 무경험 취업 유경험 |
287 21 266 |
331 19 312 |
67 3 64 |
25.5 20.3 25.8 |
344 17 326 |
57 -3 60 |
19.9 -15.1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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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령계층별ꡐ쉬었음ꡑ인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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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 천명, %, 전년동월대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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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
6 |
2009.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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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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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감 |
증감률 |
증감 |
증감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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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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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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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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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체> 15~29세 ․15~19세 ․20~29세 30~39세 40~49세 50~59세 60세이상 |
1,202 218 27 191 159 160 271 395 |
100.0 18.1 2.2 15.9 13.2 13.3 22.5 32.9 |
1,306 279 22 257 170 171 314 373 |
100.0 21.4 1.7 19.7 13.0 13.1 24.0 28.5 |
139 66 -11 77 14 22 42 -5 |
11.9 30.9 -33.1 42.4 9.0 14.4 15.4 -1.2 |
1,260 267 22 245 164 163 296 371 |
100.0 21.2 1.7 19.5 13.0 12.9 23.5 29.5 |
59 49 -5 55 5 3 25 -24 |
4.9 22.7 -19.8 28.8 3.0 1.9 9.4 -6.0 |
지금 백수 열흘차쯤. 처음 생각했던 규칙적인 생활과는 많이 다르지만 뭐. 그래도 아직 일주일째니까 하면서 스스로 애써 위안 중.
지난 일기에서 걱정했던 '집에 어떻게 이 사실을 밝힐까'는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일단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엄마가 충격을 덜 받도록 해야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에 애둘러 다른 말부터 꺼냈다.
"엄마, 내가 수영장 등록이 이틀 전에 끝났는데 그걸 모르고 있엇잖아. 하하하하. 근데 다시 등록할까말까 고민이야. 왜냐고?? 앞으로 내 생활이 어떤 규칙으로 움직일지 몰라서``` 무슨 말이냐고?? 아~ 우리 회사 망했어. 그래서 다시 알아봐야하는데, 새 회사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그래서."
"응, 응, 그래" 하며 듣고 있던 엄마가 "정말??"하며 되묻는다. 놀랄법도 하지. 그래도 최대한 덤덤하게. 나까지 엉엉 울면 어쩌나 싶으니까.
"정말이야, 사실이야. 절대 내가 먼저 때려치고 나온거 아니라니까~ 엄마도 참. 그래도 새로 몇 곳 이력서 넣어놨고, 면접도 보기로 했어. 일자리는 곧 구해 질꺼야. 걱정마. 혹시 안되면, 나 짐싸들고 강릉으로 내려갈지도 몰라~. 그때 나 먹여살려줘야해~~??"
그렇게 엄마와 통화는 은근슬쩍 끝났는데. 문제는 이럴때 하필 가족 모임이 생기는 거다. 우리 아버지 생신.
제목에서도 썼지만 우리 아버지 생신은 윤 5월. 이 윤달이라는 것이 보통 4년만에 한번씩 돌아온다고 하는데 그것도 윤4월 윤3월 윤5월 뭐 이렇게 해마다 다른 달이 끼나보나. 그 중 하나가 우리 아부지 생신인데. 우리 엄마도 결혼 26년 동안 2번인가 치렀다는 생일이 하필 이때다. 참고로 우리아빠는 태어난 날 빼고 생일이 세번째라나...
이렇게 귀한 생일이니 고명딸인 나. 집에 안내려갈 수도 없고, 오랜만에 생일 맞는 우리 아부지 친척, 친구들 다~ 불러모아서 '잔치'를 벌이시려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대부분의 질문은 "서울에서 언제내려왔느냐??"인데 "금요일이요"라고 하면 뭐 요즘 주 5일제 많이 하니 걸릴 일은 없었고. 특별히 말하지 않는이상 "언제 올라가느냐"는 물어보지 않더라. 사실 이 질문 했으면 어쩌나 고민 했는데 말이다. 히히. 월욜날 올라갈 계획인데, "왜?"라고 물으면 쵸큼 그렇잖아~.
고비가 있었다. 한 번. 스님과 함께 처음보는 보살님들과 점심을 먹게된 토요일 낮 다들 '처음보는 이 처자(나)'에게로 관심이 쏠린 것이다. "학생인가?"하고 궁금한게 많은 보살님들 관심을 표출한다. "아니예요~." 하고 더 할말을 못 찾고 있는데 저 쪽에서 스님 한마디 "기자잖소."
끄아아아아아;;;;;;
우리 나라 별별 신문이 다 있다는 걸 모르는 우리 동네 보살님들은 무조건 "어느 일보냐고" 묻는다. 히히 내가 방송용 얼굴은 아니라는 거지. 여튼 참 곤혹스럽게 됐는데 대답 안 할 수는 없고 그냥 이전 신문사를 현 직장인 것 처럼 대신해 말을 섞는다. "일간지 아니고 주간지예요."
그냥 여기서 그쳤으면 좋겠는데 우리 어머니 한마디 거드신다. "일반 신문 아니고 국회의원들 인터뷰 하고 뭐 그르잖소. 맨날 국회에서 살지~."
아하하하하하;;;;;;; '엄마 이제 그런 말은 그만해도...' 하지만 어쩌랴 이미 말은 엄마 입을 떠나 보살님 귀에서 뇌에 안착한 상황인 것을. 이렇게라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챰 이럴 땐 어째야 할지 또 모르겠다.
더 이상 말하기 꺼려했던 모습이 보였던 건지 그날 점심도 내 거취에 대해 캐묻는 보살님 없이 슬쩍~ 지나갔다. 그러니 뭐 나도 굳이, '나 백수예요'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저 모르는게 약일 때도 있는거고, 나는 다만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 아닌가...??
아직 내가 백수라는 사실을 친구 몇몇과 가족만이 알고 있다. 이 '비밀'아닌 비밀은 언제까지 가져가야 할까.
[7월 12일]
구체에서추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