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이 한강대교를 기어서 건넜다.
비장애인들의 삼보일배보다 더 ‘힘겨운’ 투쟁이다. 손ㆍ무릎으로 아스팔트와 맞닿아야하는 고통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의 비난과 수치심을 참는 것도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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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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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 활동보조인제도화 투쟁위원회는 27일 한강대교에서 노들섬까지 기어갔다. 7천억원을 들여 짓는 노들섬 문화예술센터가 장애인 생존권보다 더 중요하냐는 주장이다. |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한강대교 위를 기어야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장애인 단체는 서울시가 7천억원을 들여 짓는 노들섬 예술센터보다 장애인 생존권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27일 늦은 2시부터 노들섬과 이어지는 한강대교 위에 올라선 중증장애인은 서른명 남짓. 이들은 기어가는 것 자체가 활동보조인이 없는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용산구 한강로3가와 동작구 노량진 사이를 잇는 한강대교 북단. 2시를 넘기기 전부터 장애인은 노량진 방향으로 향하는 5개 차로 전체를 멈췄다. 휠체어에 탄 중증 장애인들은 큰 현수막이 펼쳐진 아스팔트 바닥 위로 내려 앉았다.
약 1백미터가 조금 넘는 노들섬 입구까지 ‘장애인 속도’에 맞춰 기어가겠다는 것. 앞뒤로 전경이 배치됐고 용산구 쪽에서 한강대교로 진입하던 차도 멈춰 섰다. 경찰 간부급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차량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차로만 내달라는 것.
설득 끝에 장애인은 4개 차로만 이용해서 행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찰측은 한차로만 더 내달라는 부탁을 계속했다. 박영희 전장연 공동대표는 “장애인은 지금까지 참아왔다”며 “좁은 길로 갈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4개 차로 모두를 이용해 행진했다.
비장애 성인 걸음으로 열 발자국도 걷기 전 팔과 무릎, 손으로 기어가는 장애인에게서는 벌써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김정 씨는 “힘들고 수치스럽지만 지금 잠시 수치스럽지 않으면 평생 활동보조인 없이 수치스럽게 살아야할 것”이라며 결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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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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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손과 팔 등 온 몸을 이용해 기어갔다. 더러는 몸을 굴리면서 앞으로 나가기도 했다. 각자 다른 방법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속도와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쉬고 있다. |
손에는 하얀 목장갑을 끼고 팔과 다리에 보호대를 했지만 아스팔트 바닥이 푹신할 수는 없는 법. 휠체어에서 내려온 참가자들은 2m를 이동하는 데에도 서너번 멈춰서 숨을 골랐다.
“힘들지만 또 가야한다”는 박영희 전장연 공동대표는 “‘오페라 하우스를 아직 짓지 않았다, 볼 것이 없다’며 우리를 말리고 있지만 장애인이 활동할 수 있는 기본권보다 더 우선시 되는 오페라 하우스 터라도 가보자”고 앞장섰다.
장애인이 기어가는 길옆으로 자동차가 달린다. 버스 승객의 시선은 온통 바닥으로 내몰린 장애인에게 쏟아진다. 더러는 항의의 뜻으로 경적을 울리거나 창 문밖으로 욕을 하기도 한다. 고급승용차를 탄 부인은 욕하고 항의하며 3분가량 멈췄다. 뒤로 차가 막히는 것은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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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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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팔 다리가 힘든 것만큼 주위의 비난에도 힘들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시선이 꽂히는 것은 물론 담배꽁초와 욕설들이 날아들었다. 박홍구 위원장은 세상 속도에 맞춰 활동보조인의 보조를 받으며 살고 싶다고 주장했다. |
그래도 자동차 속도는 장애인이 기어가는 속도보다 빨랐다. 박홍구 활동보조투위 공동위원장은 한강 다리 위로 달리는 자동차 속도와 기어가는 장애인 속도가 마치 세상과 장애인의 속도 차 같다고 비유했다. 박 위원장은 “활동보조인 도움을 받으며 세상 속도에 맞춰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한강다리를 몸으로 2시간 30여분 동안 이동한 거리는 약 60m. 비장애인이 전력달리기를 했다면 10초 안에 뛰었을 거리다. 아니 천천히 걸어도 1분이면 통과했을 거리다. 그 거리를 ‘장애인 속도’로 손바닥으로 도로를 기면서 더러는 온 몸을 굴리면서 앞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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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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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가 넘으면서부터 한강대교 위를 기던 장애인 3명이 연달아 구급차에 실려 중대 아산병원으로 이송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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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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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쯤. 행진을 시작하고 5시간이 지났을 때 박 현 국장은 도로에 누웠다. 주변에서 괜찮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마른 입술 대신 고개만 끄덕끄덕 대답했다. 그러나 몸상태는 달랐다. 그는 곧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
한 낮에 무리를 했던 탓일까. 이동한지 4시간째에 접어들면서 도로를 기던 장애인 3명이 구급차에 실려 용산 중대병원으로 실려 갔다. 탈진이다. 그 중에는 앞에서 참가자를 독려하던 박현 국장도 포함돼있었다.
박 국장이 실려 간 후 마이크를 넘겨박은 박영희 대표는 “노들섬이 멀지 않았다”며 “이명박 시장이 장애인 삶이 어떤지 알 수 있도록 정진하자”며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어느덧 해가 한강다리 건너편 멀리로 넘어갔다. 가로등과 건물 안 불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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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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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대교 행진을 마친 양영희 공동위원장이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
7시 30분. 드디어 한강대교를 건너 노들섬 앞에 도착했다. 무름과 팔, 손이 아프다는 양영희 활동보조투위 공동위원장은 “생각보다 힘들다”면서도 웃어 보였다. 양 위원장은 “처음 시작할 때 느려서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오기가 생기고 동지들이 지쳐서 병원에 실려가는 것을 보면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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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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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7시50분께 노들섬 앞에서 정리집회를 열었다. |
39일째 서울시 앞에서 농성을 한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투쟁위원회는 전날인 27일 서울시로부터 답변을 들었다. 박현 전장연 활동보조투위 교육정책국장은 “어제 서울시가 가장 중요한 제도화를 빼고 실태조사와 긴급구제만 실시하겠다는 답신을 보냈다”며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실태조사 목적이 활동보조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을 알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제도화가 없는 실태조사는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다.
노들섬까지 기어가던 김정(28)씨 역시 “서울시가 정한 30억원은 제도화에 필요한 비용의 1%밖에 안 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예산 증액이 아니다”라며 “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한 요구에 예산 타령만 하는 서울시를 두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활동보조서비스를 위해 편성된 예산은 2억 7천여만원. 30억원은 현재보다 약 10배 이상 증액된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단체는 7천억원이 넘는 노들섬 예술센터 건설에 쏙은 관심의 천분의 일만큼만 중증장애인에 쏟았다면 이렇게 무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늘 가운데 떠 있던 해가 강 너머로 사라진 후 참가자들은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 예정 부지 앞에서 정리 집회로 마무리를 했다.
김유리 기자 grass100@ngotimes.net
“데모하다 잡혀가면 안 찾으러 온대요”
[인터뷰]행진 참가한 김수경 부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가부좌를 틀고 양 손과 팔에 의지하며 노들섬까지 기어간 김수경 부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그 역시 장애인이다. 하지만 약 1백m를 두 팔에 의지해 이동하면서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김 소장은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웃음을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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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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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부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가운데 갈색 모자). |
하지만 차도로 지나가는 택시 승객이나 버스에서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야유를 퍼붓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노들섬 앞에서 만난 김 소장은 “야유 퍼붓던 국민들께 불편을 끼쳤다면 죄송하지만 장애인이 이렇게 산다는 것도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소장은 시민 반응이 모두 개인 품성 탓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부와 국민의 책임이죠. 시혜ㆍ혜택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을 보여줬다면 야유를 하지 않았을 텐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심어주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죠.”
김 소장은 장애인이 요구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이뤄지면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과 빈곤층 등 모든 약자들이 편히 살수 있는 대한민국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시청 앞에서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했을 때도 김 소장은 자리를 함께했다. 현재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외에도 전국공공임대주택연합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여러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김 소장을 보는 아들과 남편은 안절부절이다. 1급지체장애인인 남편은 제발 ‘데모’만은 하지 말라고 하소연한다. 올해 고3인 아들은 “엄마가 경찰에 잡혀가면 찾으러 가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아들과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회 현장에 함께하는 김 소장. 그의 바람은 한결같이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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